80년대 서울의 낭만
당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는 2천만원 (강북이 더 부자이던 시절)
시청 근처 대기업 월급 초봉은 50만원
KFC햄버거 900원
롯데리아 햄버거 800원
짜장면 500원 (배달도됨)
라면 한그릇 300원 (공기밥을 그냥 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육성회비 6천원 (못 내던 아이들이 많았음)
프로스펙스를 신으면 부자집 아들이였던 시절
나이키가 화승이던 시절
저가 서민 운동화 슈퍼카미트
그래도 저축하면 금리 30%로 돈을 벌어 청약저축 가점없이 집을 사던 대한민국 경제의 대부흥기였던 시절
서울 호텔의 스위트룸
TV와 스탠드, 반좌식 화장대, 여분의 까운과 다림질거치대
아직도 남았지만, 80년대 재래시장
아직 이마트 같은 신식 마트가 없던시절이다.
간판에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이 있는 것을 보면 대기업 직원들이 다니던 서울 시내이다.
남산 올라가는 길.
이 곳을 더 지나치고 좁은 계단이 나오면 야바위가 잔뜩 영업중이였다.
연회의 꽃은 그룹사운드!
지방에서 서울로 수학여행 온 남중 촌놈들.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현재의 조선호텔에서 시청 광장쪽으로 가는 길
경복궁 입장을 대기하는 외국관광객.
주로 한국전쟁을 겪은 가족의 여행이 많던 시절.
자신이 지켜준 나라의 발전을 관광하는 숭고한 장면이다.
정말 잘사는 한국의 80년대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과 서울대공원만 존재하던 당시에 실내놀이공원 롯데월드는 충격이였다.
한강 고수부지의 낭만
지금처럼 인스타그램 찍으러가는 스팟이 아닌 진정한 휴식을 하러 가던 곳이다.
서울의 명동 야경
당시에는 일본 도쿄와 정말 비슷한 모습이였다.
한국통신의 리즈시절
동전을 넣어 발신만 하던 공중전화가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공중전화에는 사람의 애뜻한 사연도 많았다.
지하철 2호선의 개통
당시에는 구멍을 뚫는 티켓방식인데 이걸 잃어버려서 소동도 많았다.
손에 꼭 쥐고 타고 내렸던 낭만의 추억.
충격적인 부분은 에어컨이 없었다.
창문을 열고 지하터널 바람을 씌면서 달렸음.
소풍가는 날
소풍가면 대충 길에서 다같이 돋자리깔고 밥을 먹었다.
그래도 사진은 부잣집 딸래미이다.
주민 자치 선도부 아저씨
길에서 청소년이 담배를 피거나, 머리가 장발이면 지도하는 봉사자분들이다.
살짝 사회주의 성향이 남았던 제도이다.
그런데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잘 못 걸리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당번 학생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물도 단체로 받아서 마시고 겨울에는 석탄을 받으러 갔다.
모든 학급에는 당번이 두명씩 존재해서 일주일간 모든 청소와 살림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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