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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아카이브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아들의 최후 이야기

by memewave 2024. 2. 18.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아들

깊은 산골 지형을 이용한 의병들의 신출귀몰한 활약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군은 회유 작전을 병행하기로 한다. 전향하면 귀족 지위와 돈을 주겠다고 의병들을 회유하는데 이때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 회유의 작업으로 지금까지 남은 후손들의 안타까운 조상들인 친일파가 늘어났다. 참으로 쪽빠X 다운 생각이다.

 

 

 

일본군은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큰아들을 납치한다.

그리고 전향을 권하는 가스라이팅의 편지를 쓰라고 협박한다. 당시에는 가장 많이 사용한 쪽빠X방식으로 유명하다.  (가슴아픈 오늘날, 친일파 성향 보수단체가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때 홍범도 장군의 부인 이옥녀 여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뿐이다. 내가 설혹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아니 쓴다."

 

홍양순 선생의 활동이 기록된 '홍범도 일지' 필사본.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버티던 이옥녀 여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철창 안에서 사망한다.

 

 

일본 쪽빠X들은 이옥녀 여사가 직접 쓴 것처럼 조작한 편지를 홍범도 장군에게 보낸다. 이 또한 참으로 쪽빠X 답다. 그런데 편지를 전하러 간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8명을 보내도 소용 없자 9명째로 보낸 사람이 홍범도 장군의 큰아들 홍양순이였다.

 

 

홍양순이 편지를 품고 깊은 산 중에 들어서자 곳곳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총구를 들이댄다.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이 보낸 전령이 자신의 장남이란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홍범도 장군은 자식이 아버지를 망치려 든다며 크게 노하여 홍양순에게 총을 쏜다. 그러나 역시 마음이 흔들렸는지 총알은 홍양순의 귀를 스친다. 홍양순은 한동안 몸을 추스르며 다친 귀를 치료한다.

 

상처를 회복한 홍양순은 아버지의 의병 대열에 합세했다.

 

16살짜리 소년 의병이 되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함흥 신성리 전투, 통패장골 쇠점거리 전투, 하남 안장터 전투, 갑산 간평 전투, 구름을령 전투, 괴통병 어구 전투, 동사 다랏치 금광 전투 등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홍양순은 1908년 6월 16일 정평 바맥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노년이 되어서도 홍범도는 그 전투를 잊지 못했다.

 

"정평 바맥이에서 500명 일본군과 싸움하여 107명 살상하고, 내 아들 양순이 죽고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자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이는 중대장이었다. 5월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홍양순 의병은 아버지 휘하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1908년 홍 선생은 만 16세의 나이로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 중 순국했다. 그해 3월 부인 이씨도 남편의 의병 활동으로 인해 체포돼 고문 중 유명을 달리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열전 중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편

홍범도 부인 이씨와 아들 양순에 죽음에 대한 기록

 


"일제 앞잡이들은 이씨를 협박해 남편에게 편지를 쓰도록 강요했다. '실끝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 뿐인데, 영웅호걸인 내 남편은 나같은 아녀자의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너희 놈들은 나와 말하지 말고 너희 마음대로 해라. 나는 절대로 글을 맡지 않는다' 이씨는 반죽음을 당하는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홍범도 의진에서 막하 중대장으로 활동하던 아들 양순은 의병 20여명을 데리고 정평의 바배기라는 곳에서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양순은 중대장 답게 앞장서서 의병들을 독려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홍범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양순의 어머니도 갑산 감옥에서 옥사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들마저 죽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의병대장 홍범도는 자기의 슬픈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고려혁명군'과 임시정부의 '대한의용군 총사령부'가 충돌한 자유시 참변 사건의 당위와 이유는 명확하게 증명되지는 못했다. 홍범도가 무장부대 통합이라는 명분과 소련의 권위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무기와 식량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현실적 조건 등으로 타협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한인의 독립운동에 민족해방운동의 지원이라는 명분 하에 한 약속 때문)

 

그 약속하에 김좌진, 김규식 장군들과 이념의 갈등, 의견이 타진되지 못한 러시아의 내전이 있었고 동족끼리 안타까운 전투가 있던 역사적 사실은 기록되고 있다.

 

이 부분을 윤대통령을 포함한 일부 보수단체와 친일파 후손들이 핑계 삼아 홍범도장군 해프닝이 생겼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기 전, 일본군과 맞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온가족이 숭고한 희생을 한 점을 우리 후손은 무시해야 할까?

 

 

세월은 흘러 흘러...

 

"그까짓 흉상 철거하는데 뭐 그리 오래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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