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패션 아이콘 G-DRAGON
샤넬이 사랑한 한국 아이돌
G-DRAGON(クォン・ジヨン)プロフィール
G-DRAGON 지드래곤
본명 : 권지용 (權志龍, Kwon Jiyong, クォン・ジヨン)
출생 : 1988년 8월 18일 (35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 대한민국
신체 : 172.7cm, 57.6kg, A형
본관 : 안동 권씨 (安東 權氏) 추밀공파 35대손
가족
아버지 권영환(1955년생), 어머니 한기란(1960년생)
누나 권다미(1983년생), 매형 김민준(1976년생)
조카 김이든(2022년 2월 4일생)
반려묘 아이(아비시니안), 조아(먼치킨)
학력
숭의초등학교 (졸업)
서울국악예술학교 (음악연극과 / 졸업)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음악연극과 / 전학)
동두천정보산업고등학교 (상업디자인과 / 졸업)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포스트모던음악학 / 중퇴)
국제사이버대학교 (레저스포츠학 / 학사)
세종대학교 산업대학원 (유통산업학 / 석사)
종교 : 개신교
병역 : 육군 제3보병사단 병장 전역
소속사 : 무소속
소속 그룹 : BIGBANG
포지션 : 리더, 메인래퍼
데뷔
2001년 대한민국 Hip Hop Flex (G-DRAGON)
2006년 8월 19일 BIGBANG 싱글 1집 BIGBANG
2009년 8월 18일 정규 1집 Heartbreaker
별명
GD, 권죵, 권집착, 권사포, 권아들, 지욘, 간지용, 지카츄, 사포지용, 까칠지용, 인간샤넬
참신한 음악적 감각과 남다른 매력으로 대중을 매료시킨 힙합 아티스트
Apple Music
"여러 방면에서 K팝의 제왕이라 불리는 BIGBANG의 G-DRAGON은 현대적이고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K팝 스타의 시대를 연 인물”
英 <가디언> 선정 대중 문화 역사상 최고의 보이그룹 멤버 선정 中
G-DRAGON은 BIGBANG의 리더, 작곡가, 남성 솔로 가수이다. 특히 프로듀싱 능력이 많이 부각되는데 BIGBANG의 모든 히트곡들은 모두 G-DRAGON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가장 히트한 노래라는 평가를 받는 '거짓말'을 19살에 작사·작곡을 시작으로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붉은 노을'로 이어지는 4연속 메가 히트 신화는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 후 본인이 프로듀싱에 참가한 본인의 첫 솔로 앨범인 <Heartbreaker>가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초의 음원 줄세우기 신화[17] 를 세우고 서태지 이후 처음이자 유일한 그룹 출신 솔로가 연간 음반 판매량 1위, 역대 음악 방송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나온 모든 BIGBANG 활동과 개인 활동하며 활동 당시 기준 (2012년~2018년) 한국 그룹 유튜브 최다 구독자 수, K-POP 그룹 유튜브 뮤직비디오 최다 조회수, 아시아인 인스타그램 최다 팔로워 수, 국내 트위터 최다 팔로워 수 등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솔로 활동으로 G-DRAGON은 MAMA에서 올해의 앨범상(2009년), 올해의 가수상(2013년)을 수상,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2009)을 수상하며 보이그룹 역사 상 최초이자 2세대 최초로 그룹과 솔로 모두 대상을 받은 가수가 되었으며 그룹으로 받은 대상까지 통산 13번의 대상을 받으며 모든 2세대 아이돌 중 가장 많은 대상을 수상한 남성 가수가 되었다.
2009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아이돌 솔로 최초로 콘서트를 개최, 2012년, 2013년 열린 솔로 콘서트 모두 시야 제한석 까지 개방하며 매진을 시켰고 아이돌 솔로 역사 상 최다 콘서트 기록을 갱신했다. 그 후 2017년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타디움으로 두 손가락에 꼽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가요계 역사 상 유일하게 솔로로 단독 콘서트를 진행하며 하루에 4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또한 같은 해에 진행한 월드 투어가 통산 65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솔로 가수 최다 콘서트 관객 동원 기록을 갱신했고, 솔로로 도쿄돔을 시야제한석까지 매진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후로도 나오는 모든 BIGBANG의 음악과 본인의 솔로 음반을 작업하며 가요계 역사상 그룹, 유닛, 솔로 모두 15년간 단 한 번도 음원 차트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유일한 가수이자 15년 간 쓴 거의 모든 곡을 음원차트 1위에 올린 작곡가가 되었다.
실제로 그는 2011년 아이돌 최초로 저작권협회 정회원 등록을 받았고, 2018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작사료를 받는 인물로 저작권 대상을 받았다. 이는 그의 음악이 얼마나 한국 대중 음악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G-DRAGON은 스스로 음악을 작사, 작곡, 편곡을 한다. 재능이 뛰어난 가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노력을 많이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철두철미함을 지녔다. 그래서 함께 활동을 하였던 동료들, 스태프들은 G-DRAGON의 인성, 태도에 대해서 칭찬을 매우 많이 하는 편이다.
G-DRAGON의 성공 이후부터 비주류였던 아이돌 래퍼가 점점 인정받기 시작하고 그와 TEDDY가 만든 BIGBANG의 사운드는 K-POP 사운드가 되어 3세대~4세대 아이돌의 음악의 기반이 되었다.
빅뱅 - 지디 - 샤넬 - 패션 아이콘
G-DRAGON은 패션의 아이콘이다.
매우 작고 마르고 외소하다. 그런데 패션의 시장에서 그는 거인이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만 놓고 봐도 국내 최초 명품 글로벌 엠버서더 선정, 아시아 남성 최초 샤넬 글로벌 엠버서더, 국내 셀럽으론 유일하게 나이키와의 콜라보레이션 등 국내 패션 업계에서는 상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가 Fashion(패션)으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2007년 이후 부터이다. 활동 당시 신었던 하이탑 운동화와 사쿤 브랜드가 젊은 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BIGBANG을 최고의 트렌드 세터로 만들었고 그 후 의류 브랜드 NII 모델이었을 때에 입고 촬영했었던 옷은 전부 하루 만에 품절, 일명 칸예 선글라스, 사과 머리, 스모키 화장, 각종 바람막이 등을 유행시키며 G-DRAGON은 BIGBANG 중에서도 패션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2009년이 되자 BIGBANG의 멤버로서가 아닌 패션의 아이콘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활동 당시 공항에서 MCM 가방을 메고 찍힌 사진이 엄청난 화제가 되면서 당시 국내 판매 계획도 없었던 이 가방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하게 되었고 결국 MCM은 이 모델을 국내에서 정식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인기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중국에서는 이 가방이 한국 여행 필수 기념품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사례가 더욱 대단한 점은 이 사진이 바로 연예계에 공항 패션 이란 단어가 유행하게 된 시초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해에 그는 한국에 Beats by Dr. Dre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는데, Heartbreaker 정규 음반 발매에 맞춰 STUDIO 제품을 주문제작하여 Heartbreaker 뮤직비디오에 착용한 이후부터 연예인들이 해당 헤드폰을 패션 아이템이나 뮤직비디오에 쓰고 나오면서 고급 헤드폰시장의 수요 자체가 치솟았다. 1년 뒤 GD & TOP 1집을 발매할 때는 컬레버레이션 한정판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 해부터 G-DRAGON은 Chrome Hearts 벨트 등을 상시 착용하고 다녔는데 KZ BRACELET라고 불리우는 실팔찌는 한국 매장에 남는 재고가 없었을 정도. 더 나아가 크롬 하츠의 아시아 수요가 그로 인해 급증하자 크롬 하츠는 그의 뉴욕 본점 방문 당시, 그가 편히 쇼핑할 수 있도록 그 날 본점 문을 닫기에 이른다.
2012년에 GIVENCHY에서 G-DRAGON을 아시아 최초로 Muse로 선정, 미국의 패션 잡지 Harper's Bazaar에서 화보를 촬영하여 발매, BIGBANG ALIVE GALAXY TOUR 2012 기간 동안 GIVENCHY에서 협찬을 받았었다.
그 후 각종 명품 의류나 액세사리는 G-DRAGON이 입었다하면 완판을 넘어 리셀이 붙었고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은 G-DRAGON에게 옷을 입히지 못해 안달이었을 정도였다.[19] 루이비통은 G-DRAGON때문에 yg에 1000억을 투자했고 심지어 샤넬은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의 'One Of A Kind' 뮤직비디오의 모든 의상과 소품을 협찬하여 큰 화제가 되었고 생로랑은 14 FW 컬렉션을 전 세계에서 그에게 최초로 착용시킬 정도.
국내 명품 소비 연령을 낮추고 한국 패션 소비의 흐름을 명품 패션으로 바꾼 그를 가장 사랑한 브랜드는 샤넬이었다. 2016년 국내 연예인 최초로 샤넬 글로벌 엠버서더로 선정. 이는 아시아 남성 최초이자 국내 연예인 중 명품 글로벌 엠버서더로 선정된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CHANEL(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패션계의 신화적인 인물인 칼 라거펠트의 총애를 받으며 남자가 트위드 자켓을 입고 샤넬 백을 매는 등 젠더리스 패션의 선두자이자 아이콘으로서 패션계의 큰 영향을 미쳤다. 칼 라거펠트와 관련한 일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G-DRAGON이 커버 모델로 장식한 보그 20주년 기념호에 칼 라거펠트가 직접 G-DRAGON을 촬영한 사진이 표지로 실려 큰 화제가 된 것이 있다.
그렇다고 G-DRAGON이 한국에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만 유행시킨 것은 아니다. 위의 활동과 함께 그의 패션을 대표하는 부분은 바로 스트릿 패션과 스니커즈 시장이다.
스니커즈 시장에서 그의 영향력은 컸다. 그가 유행시킨 대표 운동화로는 에어 조던 시리즈,[20]에어포스 하이, 반스 스타일 36, 발렌시아가 트리플 에스, 본인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에어포스 파라노이즈 등이 있다.
데뷔 후 그가 신은 스니커즈들이 한국에서 유행한 스니커즈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가 신은 나이키 마스야드 2.0은 리셀가 400만 원을 돌파했고 아무리 인기 없는 색상의 조던이라도 그가 신었다 하면 국내에 재고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한 G-DRAGON이 공항에서 반스 스니커즈를 항상 구겨 신고 있는 사진이 많이 찍혔는데 이 사진이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반스를 구겨 신자 결국 반스는 편하게 G-DRAGON을 따라하라며 신발 뒷축을 낮춘 올드스쿨 뮬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뮬 시리즈 마저 리셀이 붙는 일이 발생하며 G-DRAGON이 스니커즈 신에서 차지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낀 사례로 여겨진다.
2018년 G-DRAGON이 군입대를 하자 한국 패션의 유행이 멈췄다는 말이 나왔고 그가 군대 슬리퍼를 신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심지어 군대 보급 슬리퍼가 리셀이 붙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는 결국 2019년 전 세계 최대 패션 브랜드이자 스니커즈 분야의 절대강자인 나이키와 국내 최초로 글로벌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2019년에 발매된 나이키X피스마이너스원 에어포스 파라노이즈는 글로벌 발매 직후 품절. 지인들에게만 지급되는 노란 스우시 버전은 4000만원에, 한국에서만 출시된 빨간 스우시 버전은 100만원이 넘는 리셀가를 형성하며 아시아 지역에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 후 20년도에 파라노이즈 2를 발매. 2021년에는 나이키에서 G-DRAGON을 위한 새로운 실루엣의 새 모델인 '권도'를 출시하며 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그가 콜라보레이션한 신발을 음바페 , 홀란드 , 네이마르가 신은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최근 미하라야스히로 브랜드의 신발을 주로 신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는데, G-DRAGON이 착용하기 이전엔 아는사람만 신는정도의 브랜드였으나. G-DRAGON이 착용한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급등하였다.
현재 한국의 명품소비와 flex 문화, 명품 브랜드 협찬, 명품 소비층 연령의 저하는 G-DRAGON의 영향이 컸다. 또한 명품과 상반되는 스트릿 패션에서도 그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샤넬과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 두 브랜드에서 모두 글로벌 켐페인 광고를 진행한 유일한 인물이란 것도 G-DRAGON의 큰 업적 중 하나이다.
그는 전세계 패션업계에 한국 연예인이 아시아 시장에서 이 정도로 큰 파급력과 셀링 파워를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패션 불모지였던 한국이 G-DRAGON 이후 한국 가수들의 명품 시장 진출이 시작되었다.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한국을 알리고 현재의 K-POP 시장의 명품 진출의 길을 만들고 이끈 것이 결국 그의 성과이라고 할 수 있다.
BIGBANG 데뷔 전
연습생 기간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5년, YG엔터테인먼트에서 6년으로, 총 11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방송 경험을 쌓아왔으며 5세 때 뽀뽀뽀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고 YG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오디션 합격에 도움이 되었던 룰라의 뮤직비디오에 꼬마 룰라로 참여한 경력이 있었다.
SM 이수만의 연습생이 되어 - YG로 이적
또한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어머니가 G-DRAGON을 데려가서 다양한 오디션과 대회에 자주 참가시켰다고 했었다. 1995년에 꼬마 룰라가 해체되었고 이후에 가족과 스키장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춤 경연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이곳에서 1위를 했었다.
이때 그 대회의 사회자였던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의 눈에 띄어서 회사에 G-DRAGON을 영입하였고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8살 때부터 약 5년 간 했었다. 그러다가 G-DRAGON이 친구의 집에서 Wu-Tang Clan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지누션이 하였던 힙합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랩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YG 엔터테인먼트에 이적하게 된 계기는 X-Teen의 이희성이 작사, 작곡한 2001 대한민국 Hip Hop Flex 음반에 참여하면서였었다. 공식적으로 첫 음악 활동이기도 한 이 음반에서 G-DRAGON은 13살 래퍼라는 특이한 점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었고 타이틀 곡인 'Realize Yourself'의 참여도 모자라 'G-DRAGON'이라는 제목의 곡까지 수록되었다.
직접 가사를 작사하였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아서 랩 작사는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었다고 했었다. 이 음반을 계기로 이희성이 G-DRAGON에게 YG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오디션을 제안하였고 2002년에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뒤 YG 엔터테인먼트에 이적했었다. 그리고 SWi.T와 함께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힙합덕의 주제가를 불렀었다.
자서전에 가까운 세상에 너를 소리쳐! 책을 보면 G-DRAGON이 13세부터 작곡 수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일까지 가사에 곡 붙여 와', '이거 샘플링 해 와'라는 식으로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태양과 GDYB로 준비하다가 BIGBANG으로 데뷔하는 프로젝트로 결정되자 G-DRAGON은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본인은 몇 년 동안 데뷔를 준비하였지만 다른 멤버들은 기간이 짧은 편이어서 걱정이 되었다고. 결과적으로는 기우가 되었지만 말이다.
양현석이 다이아몬드라는 그룹명을 만들었지만 G-DRAGON이 BIGBANG으로 교체를 제안했었다.
현재 아이돌 3D 입체 응원봉의 시초가 바로 G-DRAGON이 디자인한 뱅봉이다.
2007년 8월 16일 발매한 노래 '거짓말'이 원래는 G-DRAGON이 솔로로 부르려고 만든 곡이다.
그러나 양현석은 BIGBANG 노래로 발매할 것을 권했고, 그야말로 한국 가요계에서 전설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의 시발점으로 남으면서 대성공한다. 정작 솔로 데뷔는 2년 뒤인 2009년 8월 18일에 발매한 정규 음반 Heartbreaker인데, 최초로 트랙 전곡을 음악 순위 상단에 진입시키는 등 경이로운 현상을 일으키며 일명 '줄세우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저스틴 비버가 G-DRAGON을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G-DRAGON이 매우 뛰어난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고 극찬을 했었다. 그리고 저스틴 비버가 대한민국에 왔을 때 저스틴 비버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이때 G-DRAGON이 오프닝 무대를 잠시 선보인 후 퇴장하자 관객의 절반정도가 같이 나갔다고 한다.
가수, 래퍼들 중에 G-DRAGON을 보고 꿈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을 만큼 영향력이 큰 편이다. 방탄소년단의 정국은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가 G-DRAGON이라고 이야기하였고, 힙합 래퍼 BewhY도 BIGBANG, G-DRAGON의 영향을 받아서 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아이돌 출신으로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 아티스트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은데, G-DRAGON은 래퍼들에게 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2009년 5월 11일에 방시혁은 본인의 SNS에서 대중은 재능의 산물을 알아보고 즐기고 소비하며 때론 놀라우리만치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대중은 소비라는 형태로 가장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면서 권지용은 같은 작곡이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나조차도 항상 질투하는 엄청난 재능을 소유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동작업을 했던 테디, 함승천, 강욱진, 선우정아의 인터뷰를 보면 가사나 멜로디 메이킹 부분을 탁월히 잘해서 작업이 수월하다고 대부분 인터뷰를 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음악적인 주문을 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정리가되서 나온다고한다.
2012년 박진영이 지드래곤이 작곡한 bad boy를 듣고 1년간 자기가 들은 곡 중에 최고라고 극찬을 했다.
2011년 대마초 흡연
현재도 지드래곤의 인식에 계속해서 걸림돌이 되고있는 최악의 흑역사다.
2011년 10월 5일, 지드래곤이 대마초 흡연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와 팬들과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3개월 전 누군가의 첩보에 따라 검찰이 지드래곤을 조사하였고, 모발에서 대마초 양성반응이 검출되었다.
그러자 지드래곤은 5월에 대마를 흡입하였다는 사실을 시인,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로 그친 것은 대마초를 피운 점은 불법이지만 초범이고 검사에서 확인된 대마 성분이 극소량임을 감안, 검찰 내부적인 양형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추가로 그 당시 지드래곤은 만취 상태였고 대마와 담배를 구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지드래곤은 SBS <힐링캠프>에 직접 출연, 해당 사건에 대해 일본 콘서트가 성황리에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한 번 피워보라고 준 물건을 담배라고 착각하고 한번 흡입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대마초였으며 당시 장소가 어두웠고, 형태마저 본인이 피우는 담배와 비슷했기에 일어난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일부 팬들은 "일본인이 준 것을 담배인 줄 알고 피웠다가 뒤늦게 그게 마약인 줄 알고 자진해서 검찰에 자수했다"고 알고있기도 하지만 이는 기사의 '자백했다'는 표현을 오해한 것 같다.
지드래곤은 검찰 수사에서 걸렸기 때문에 자백한 것이다. 이럴 경우 자수에 해당하지 않으며, 자백은 단지 수사의 단서가 될 뿐이므로, 기소될 경우 당연히 자수경감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에 검출된 대마 성분의 예상 흡입 기간이 하필 박명수가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준비하러 일본으로 지드래곤을 찾아간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몇몇 찌라시들은 박명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기사 제목으로 사람들을 낚는 떡밥을 투척하였다.
2023년 10월 마약 혐의로 재조사중..
(혐의 없음으로 끝난 해프닝)
인천광역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서 이선균 마약 투약 의혹을 조사하던 중, 구속 수사 중인 유흥업소 실장 A씨가 지드래곤의 마약 사실을 제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인천광역시경찰청은 "아직까지 수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으며, "이선균과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추가로 밝혔다. 현재 불구속 입건된 상태이다.
해당 논란에 대해 前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측은 계약이 만료되어서 공식 대응이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엘르 코리아와의 공식 인터뷰 영상도 사건 이후 재조명을 받자 비공개 처리된 상태이다.
지디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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